종교/쿠르드

쿠르드족

큰봄까치꽃 2012. 11. 13. 11:45

쿠르드족 Kurd

♠ 위치 및 분포 지역

쿠르드족은 나라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족 그룹으로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서로 만나는 지역에 위치하는 '쿠르디스탄' 이라는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으며 유럽, 미국, 호주 등지에도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인구는 대략 약 2,500만 명에서 3,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정확한 통계는 어렵다. 쿠르드인들은 다소 인구를 과장하며 터키나 이란과 같은 쿠르드족을 소수민족으로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그 인구비율을 낮게 보고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표는 1992년의 통계이다.


나 라 전체 인구 쿠르드족 %
터키 57,000,000 10,800,000 19%
이란 55,000,000 5,500,000 10%
이라크 18,000,000 4,100,00023%
시리아 12,500,000 1,000,000 8%
USSR 500,000
그 외지역 700,000
전체 22,600,000

♠ 기후 및 자연 환경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인 쿠르디스탄은 산악지대로 이뤄져 있으며 많은 구릉들과 고원 평야 등의 복잡한 지형을 포함한다. 겨울철에 이 지역에 내리는 폭설은 쿠르디스탄의 촌락과 촌락 사이의 교통을 두절시키는가 하면 한편으로 봄이 되어 녹아 남부로 흐르는 물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을 범람시켜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토질을 만든다.
쿠르디스탄은 여름철에 매우 덥고 겨울철에 매우 추운 대륙성 기후의 성격을 띤다. 12월부터 2월까지 많은 눈이 내려 산간 촌락을 고립시키고 4월까지 교통이 두절된다. 이 겨울 때문에 쿠르디스탄의 삼림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여름과 겨울의 기후 차이가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쿠르디스탄은 북쪽과 북동쪽으로 스텝과 같은 고지대 평원이 펼쳐져 있고 거대한 반호수 북쪽 평원(아르메니아 평원이라 부름)에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수원지가 있다. 남쪽의 저지대 평원과 동쪽의 고지대 평원이 쿠르디스탄의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디야르바크르는 주민의 99.9%가 쿠르드족으로 구성된 터키 쿠르드 지역의 중심도시이며최근에 석유가 발견된 주요 유전지대는 이라크의 키르쿡과 카나낀 터키의 바트만과 씰반 시리아의 루메이란이다.

♠ 언어
쿠르드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서부 이란어 계통의 언어로서 현대 페르시아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이다. 이 언어는 크게 쿠르만지어, 소라니어, 구라니/자자어, 케르만샤어 등의 4개의 방언군으로 나뉘며 쿠르만지어 사용자와 소라니어 사용자가 서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각 방언간의 차이가 크다. 어떤 학자들은 구라니어를 쿠르드어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라니어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쿠르드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이들은 쿠르드족으로서 같은 문화와 역사적 사건을 함께 겪어왔다. 뿐만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다른 쿠르드어 방언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쿠르만지어는 터키, 구소련 지역, 이란의 후라산 지역의 쿠르드인들에의해 사용되어 지며 소라니어는 그보다 남쪽에 위치한 이라크, 시리아, 이란 쿠르디스탄의 중부 지역에서 사용하며 구라니어는 이란 쿠르디스탄의 남부에서 사용된다. 그리고 케르만샤어는 이란의 소라니어권과 구라니어권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며 중심도시는 세넨다즈이다. 마지막으로 자자어는 구라니어와 같은 계열의 방언으로서 터키 쿠르만지어권 사이에 언어적인 섬으로 존재한다. 이 자자어 사용자들은 과거에 구라니어 사용 지역에서 이 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 민족적 특성
쿠르드족은 동쪽으로 이란, 남쪽으로 아랍, 서쪽으로 터키, 북쪽으로 아르메니아와 카프카즈계 민족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주위 민족들과 서로 다른 언어적, 문화적 공동체로 존재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기원전 12-9세기 사이에 러시아 남부지역에서 지금의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이주한 아리안족이 토착민을 기저층으로 하여 형성된 민족이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 강력한 왕국(메대)을 건설하여 페르시아인들을 지배하였으며 바빌론과 협력하여 당시 중동의 최강국이었던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기도 했다. 신,구약 성경에는 적잖게 쿠르드인(메대 사람으로 등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유목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부족연합과 부족들이 여름 목초지와 겨울 목초지를 오가며 이동생활을 하고 있다. 쿠르드 사회의 유목 경제는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공동체는 가장 기본적으로 혈통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쿠르드족은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지만 다른 민족들과 달리 가정에서 여성들이 비교적 자유롭고 여성의 권리가 크다는 사실이 타민족들과 다른 차이점이다.
외형적으로 쿠르드족은 매부리코에 흰 피부가 특징이지만 대부분 중동 민족들이 서로 섞여있기에 이러한 특징이 아주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사회와 문화
전통적인 쿠르드 사회는 부족과 몇 개의 부족들이 합해진 부족연합을 하나의 생활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다. 부족은 공동의 목초지를 가지고 있으며 외부에 대하여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상당수의 경우 쿠르드 부족은 혈연적 관계에 기초하여 이뤄져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적, 경제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다.
쿠르드 전통 사회에서 지역의 토호인 아가(Agha)는 한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지역의 촌락민들은 아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최근까지 일반적인 쿠르드 사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점차로 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쿠르드 사회 체계는 점차 변화되어 도시 중심 생활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도시화 현상에 따라 아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 질서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신진 지식인들이 전통적인 쿠르드 사회의 모습 가운데서 불만을 표시하였고 전통적인 사회는 혁명의 대상이 되었다.
산악지대의 주민들은 문맹률이 높지만 도시주민에 있어서는 교육시설의 보급과 경제적인 자극으로 문맹률은 줄어가고 있다. 터키의 쿠르드족은 72% 이상의 문맹률이며,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아랍 국가들의 평균 문맹률보다 높은 73% 이상이다.
쿠르드족은 전통적으로 일부일처제이며 청춘 남녀들은 약혼 전에 서로를 알고 사귀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전통적인 다른 무슬림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 터키,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의 쿠르드족 현황

◈ 터키 쿠르드족
터키 건국자인 무스타파 케말은 공화국 초기부터 Kemalism으로 통칭되는 터키화 정책을 취하여 쿠르드족의 주권을 말살하였다. 1991년까지 쿠르드어는 어떤 용도로든지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쿠르드인들은 '산악 터키인'이라 불렸다. 이러한 터키화 정책에 의해 많은 터키 쿠르드인들이 터키 민족에 동화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민족저항운동은 사그러들었었다.
그러나 1984년부터 쿠르디스탄 노동당(PKK)의 민족저항운동이 시작되어 정부군과 내전에 돌입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전쟁은 터키 국가 발전에 커다란 위협과 손실을 가져다주고 있어 터키의 가장 큰 사회 이슈 중의 하나이다. 쿠르드 민족 정치세력 외에 일반 쿠르드인들은 터키에 동화된 채로 살고 있다. 한편 이러한 일반 쿠르드인들이 정부에 반하는 감정을 가지는 이유는 쿠르드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터키 동남부의 경제적 저개발이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은 PKK를 지원하는 한 요소이다. 현재 터키 쿠르드인들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국제사회에 쿠르드 문화와 터키 쿠르드인들의 인권 상황을 알리면서 쿠르드 문제를 국제 여론화시키는 일들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선교전략: 쿠르드족의 민족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터키 국내 정치상황은 터키 쿠르드족에 대한 선교적 접근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쿠르드족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보다 그들과의 접촉 자체가 정치적인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쿠르드어 교육 및 출판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사회적 여건 자체가 쿠르드어를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선교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터키에는 현재 약 600명의 전세계로부터 온 사역자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쿠르드족 사역에 동원될 수 있다. 터키 현지 교회 지도자들 또한 터키 동남부의 복음화율이 극히 저조함을 안타까워하며 동남부 사역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동남부 쿠르드인들이 집중하여 살고 있는 곳에는 사역자가 4-5명 있다. 터키 동남부 사역(쿠르드족 사역)을 위해서 비지니스 선교전략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인터콥을 비롯해서 미국의 단체들도 준비하고 있다.

◈ 이라크 쿠르드족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민족의 주권을 가장 많이 인정받은 쿠르드족 집단이다. 1970년 정부와의 자치 협상에서 쿠르드어 교육과 교육어로서 쿠르드어가 허용되었으며 이라크 정부는 1974년 자치법을 공포하여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지역에서 쿠르드족이 자치를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라크 쿠르드족은 자치지역 내에 키르쿡(유전지대)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불만족하여 저항운동을 시작하였다. 실제로 정부의 조치들은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회유정책에 불과하였으며 자치법마저도 실제적인 쿠르드족의 자치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라크 정부는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족의 민족 저항운동이 제압되지 않자 1975년부터 쿠르드족에 대한 강경 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자행된 쿠르디스탄 초토화 작전과 안팔작전(Operations Anfal)이 가장 유명한데 이 작전을 통해 4,000개 이상의 쿠르드족 촌락이 초토화되었으며 수십만 명이 학살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 안팔작전 기간에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할랍자 마을 전주민 5000명이 5분 안에 즉사한 사건은 세계에 잘 알려졌다. 이 사건은 전체 8회에 걸쳐 진행된 안팔작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1988년 1년간 진행된 안팔작전에서만 쿠르드족 민간인이 10만 명 이상 죽게 되었다.
최근에는 1991년 걸프전 직후에 발생한 쿠르드족 봉기에 대한 이라크군의 강경 진압으로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1997년 현재까지 터키와 이란 국경지대 천막촌에서 국제 구호기구의 구호물자로 생명을 연명하고 있다. 1990년 걸프전으로 인한 UN의 대이라크 무역 제재조치로 이라크 어린이들이 하루에 4000명씩 죽어가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하여 국제 인권단체들의 반 UN제재 운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쿠르드족 어린이들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처지에 놓여있다. 그러나 민족 국가가 없는 이라크 쿠르드족은 자체 내의 내분으로 자신의 민족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의 인권 침해 사실은 1991년 이후에 전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따라 쿠르드족의 문제가 국제 문제화되었다.

선교전략: 하나님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세계교회가 쿠르드족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하셨다. 지금은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UN의 이라크 제재조치에 의해 이라크는 단지 요르단과의 육로만 열려있다. 국제전화나 팩스도 아주 제한적으로 열려있어서 일반인이 통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쿠르드족 사역을 위해서 사역자가 바그다드로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며 이는 매우 필요한 조치이다. 그 곳에서 많은 쿠르드족을 만날 수 있으며 이라크 쿠르드족 선교접근 전략들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북부 쿠르디스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라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그칠 때 이라크 선교뿐만 아니라 쿠르드족 선교의 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 이란 쿠르드족
이란 쿠르드족은 20세기에 들어 팔레비 왕정 치하에서 심하게 탄압받았다. 그래서 1979년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은 이란의 쿠르드족에게 큰 희망을 주었으나 호메이니 정권은 혁명에 열렬하게 동조했던 쿠르드족의 열망을 무시하고 말았다. 호메이니 정부는 이슬람 주의를 내세워 소수민족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슬람 주의는 민족적 구별, 사회 계층적 구별 없이 무슬림으로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족의 주권을 주장하는 쿠르드족을 용인할 수 없었다.
현재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 난민들을 위해 가장 활발히 구호 활동을 하는 나라이며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이란의 이슬람주의를 쿠르드족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란 국경지대의 쿠르드족 사회에는 현재 이슬람 부흥주의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반면 이란 내의 쿠르드족의 민족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으며 쿠르드족 민족운동가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함으로써 국제적인 테러 국가의 악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의 마하바드에서는 과거 1946년에 쿠르드 국가가 1년간 수립되었던 적이 있다. 현재 마하바드는 세넨다즈와 함께 이란 쿠르드지역의 중심도시이다. 이란은 역사적으로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에 대해 지도자를 암살하는 수법으로 대항했다. 이러한 전략은 유효하여 현재 이란내에서 쿠르드족의 민족주의 운동은 수그러들었고 겉으로 보기에 평안해 보인다.
이란은 쿠르드족 선교에 있어서 관문국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란의 국어인 페르시아어는 쿠르드어와 같은 친족언어이며 이란인들은 쿠르드인들과 인종적으로도 가깝다. 또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선교전략: 이란의 쿠르드족은 크게 두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란의 서부와 이란의 북부 호라산 지역이다. 그런데, 이란의 쿠르드족 가운데 사역자가 직접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대부분의 쿠르드족 도시가 이란내에서 대도시에 속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이 들어가서 살기에는 신분확보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쿠르드 지역과 가까운 대도시인 타브리즈나 이스파한이 적당한 관문도시이다. 타브리즈에는 큰 대학이 있어 학생신분으로 들어가기에 용이하다. 그리고 타브리즈는 터키나 이라크와의 교통도 매우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 아르메니아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의 쿠르드족은 전세계 쿠르드족 집단 가운데 가장 자유롭게 쿠르드족의 주권을 누렸던 집단이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반세기 동안 아르메니아 쿠르드족은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으로 쿠르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쿠르드어 신문인 Riya Teze가 발간되었으며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쿠르드 방송국이 설립되었으며 쿠르드족 민속무용과 음악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88년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 내의 카라바그 사태에 연루되면서 아르메니아 내에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 아르메니아의 쿠르드족이 그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쿠르드족 문화 창달과 연구 부문은 아르메니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예로서 예레반에 있는 국립과학대 오리엔탈 연구소에서는 쿠르드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연구물들과 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 발간되는 Acta Kurdica라는 학술지는 쿠르드 언어, 문학, 문화, 역사, 사회, 정치, 경제 등 전분야에 대한 훌륭한 것이다.

♠ 종교
인구의 95%이상이 수니이슬람 샤피이파에 속해 있고 이란 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쿠르드인들은 시아 이슬람을 따른다. 그밖에 극단적 시아파(굴라트 Ghulat), 수피즘,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교가 혼합되어 있는 알레비파, 아흘알하끄(진리의 백성), 그리고 사탄숭배자로 알려져 있는 예지디 등이 있다.

♠ 기독교 상황
쿠르디스탄에는 소수의 전통적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명목상의 기독교인들로 복음전파의 열정이 없으며 이슬람 국가에서 오랫동안 억압당해 오는 바람에 영적으로 많은 눌림 가운데 있다.
1920년대에 쿠르드족 가운데 사역하던 선교사들은 극심한 정치적 변화로 인해 철수해야만 했다. 이라크에서는 루터교 선교사들이 쿠르드족 내에서 사역했는데 그 결과 이라크에 `아랍복음교회'가 세워졌다. 최근에 알-에-하끄 지역에서 복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70∼1971, 젊은이들로 구성된 5개 팀이 이라크 내의 쿠르디스탄에 들어가 10,000권의 누가 복음을 배포하였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이라크 내 자치지역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성경번역 도미니칸의 로마카톨릭 재단이 성경번역과 사회 참여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도미니칸에 의해 완료된 번역은 잠언(1947-49), 요한복음(1951), 누가복음(1953)이며 독일의 Orientolient'에 의해 번역된 성경은 요나서, 예수, 죽음의 정복자(야이로의 딸), 예수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그리스도의 생애), 그리스도의 부활 등이다.
1998년 7월 현재 터키 쿠르디스탄에 사역자 한가정과 싱글 2명의 사역자가 사역하고 있으며 독일, 미국, 한국 등지에서 쿠르드족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 모임이 진행되고 있고 비교적 한국교회가 쿠르드족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러나 1996년 9월 이라크 사태로 이라크 북부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추방당한 이후에 현재 이라크 쿠르디스탄에는 사역자가 한 명도 없고 이러한 상황은 이란도 마찬가지이다. 더 많은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이 글은 http://fgtc.or.kr/gnu3/?doc=bbs/gnuboard.php&bo_table=pds_mission&page=1&wr_id=17에서 가져온 것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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