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우리말 사랑

사동사와 피동사

큰봄까치꽃 2012. 11. 9. 17:49

일을 시키거나 행위를 하게 하는 뜻을 가진 동사를 '사동사'라고 한다. 반대로 남으로부터 움식임을 받게 하는 동사를 '피동사'라고 한다. 피동사는 용언에 '-이·-히·-리·-기' 따위의 피동 접미사가 붙어서 이루어지고, 사동사는 용언에 '-이·-히·-리·-기·-우·-구·-추' 따위의 사동 접미사가 붙어서 이루어진다.

'보이다·잡히다·팔리다·안기다' 따위는 피동형이고, '먹이다·좁히다·울리다·웃기다·비우다·돋구다·맞추다' 따위는 사동형이다. 그러니까 접미사 '-이·-히·-리·-기'는 피동과 사동 양쪽에 쓰인다.

사동문은 주로 사동사로 이루어진다. 사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사동문을 만들려면 다른 문법 형식을 취해야 한다.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를 다른 형식의 사동문으로 하려면 '아이에게 밥을 먹게 하였다'로 할 수 있다. 어떤 형식이든 우리의 언어 습관에 어색하지 않은 것이 좋다.

"아이디어 썩히지 마세요" 1999년 2월 5일치, 스포츠서울 33면 기사 제목이다. '썩다'라는 동사에 접미사 '-히'를 붙여서 '썩히다'는 사동사를 만들었다.

접미사 '-이'나 '-히'를 붙여서 사동사를 만들 때는 이 두 접미사 중 어느 하나를 선택적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용언에 따라서 '-이'를 쓰기도 하고 '-히'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용언이 이 두 가지를 다 쓰는 예는 거의 없다.

'먹다'에 이들 접미사를 붙여 보면 '먹이다'와 '먹히다'로 된다. 그러나 이때에는 두 말의 뜻이 다르다. '먹이다'는 사동사이고, '먹히다'는 '피동사'이다. 같은 사동사이거나 피동사이면서 이 두 가지 꼴이 한꺼번에 쓰이는 예는 표준어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추세다.

'썩다'의 사동형은 '썩이다'를 표준어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전들이 '썩히다'는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써키다]로 발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써키다]는 발음을 인정하려면 '썩히다'는 형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예는 '눕히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전들은 '눕다'의 사동형을 '누이다'로 하면서도 '눕히다'까지 올려놓고 '누이다'의 원말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극히 일부의 사전을 제외하고는 '썩히다'를 올려놓지 않고 있고, 아예 잘못된 말이라고 설명하는 사전도 많다. 그래서 이 말은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위의 기자 제목에서 보듯이 재능이나 아이디어 또는 물건에는 '썩히다'를 인정하고, 사람의 마음에는 '썩이다'를 쓰는 것이 좋겠다.

"그 사람은 좋은 재주를 썩히고 있다." 또는 "사과를 썩혀서 식초를 만든다."처럼 쓸 때는 '썩히다'를 "아이가 속을 썩인다."처럼 쓸 때는 '썩이다'를 채택하는 것이 대중의 언어 현상에 부합될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사전들이 '썩히다'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참고 ;http://hanbitdongin.hihome.com/newfile391.htm에서 가져옴